세상 이야기
7월 16, 17 양일간 궂은 날씨 속에 일간지 기자단 초청 울산 팸투어를 다녀왔다. 16일 아침 7시 팸투어 버스를 타기위해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한 동아일보 사옥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6시 10분이다. 이런 너무 일찍 나왔다. 언제나 약속장소에 4~50분 먼저 나가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고쳐야지 하면서 고치질 못한다. 6시 40분쯤 해서 버스가 도착하고 참석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일정표에 적힌 출발시간인 7시가 됐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일정표 시간에 맞춰서 정확한 출발은 하지 못했다. “왜냐고요?” “행사, 모임에 꼭 늦게나오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하하하”
드디어 우리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을 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차 집결지인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해 나머지 일행들을 태우고 울산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장맛비가 내렸다 그쳤다 했지만 즐거웠다.
그런데 경험담과 무용담은 단점이 있다. 재미있는 것만 골라서 하다 보니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자주 만나는 사람은 반복되는 이야기에 자칫 지루해 질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석동율부장은 베테랑이다. 계속 새로운 이야기와 이벤트를 개발해 적당히 섞어서 사용해 지루함을 달래준다. 이번에는 만 원짜리 지폐를 이용해서 반지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을 전수해 주었다. 물론 즉석에서 반지 만드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줬다.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니 문화관광해설사가 이번 투어의 목적과 이동경로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설명을 해 줬다. 그런데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름이 특이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한다. “여러분 김태희가 울산여고 출신인 것 아시죠? 제가 김태희의 선배입니다. ^^;;” 하여튼 우리는 특별한 이름의 소유자이며 김태희의 선배인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팸투어를 시작했다. 이후 방문지와 관련한 내용은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해준 내용을 인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울산시와 본인의 소개를 들으면서 첫 번째 투어장소인 옹기마을에 도착을 했다. 첫 번째 투어를 옹기마을로 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울산시에서 ‘2010울산 세계옹기엑스포’를 2010년 9월 30일부터 10월 24일까지 25일간 개최를 하기 때문이다.
온양읍 고산리에 위치한 옹기마을은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며, 생활이 어려운 마을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부산에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옹기수요가 많이 필요했다. 마침 경상북도 영덕에서 옹기공장을 하고 있던 한국 칸가마(노부리가마)의 창시자이고, 옹기 장인인 허덕만 씨가 부산이 가까운 곳을 찾다가 이곳에 와서 땅을 얻어, 공장을 짓고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때가 1957년이다. 보릿고개로 어려운 시기라 옹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과 각지의 도공들이 몰려와 급속도로 마을이 성장했다. 이때는 옹기를 남창 역을 통해 서울로 실어 올리기도 하고 미국 등 외국에도 수출했다. 마을이 점점 번창하자 1970년대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동(分洞), 주민의 세대수가 200여 세대가 넘었다. 그 후 산업화가 되면서 플라스틱 용기가 생기면서 옹기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창시자 허덕만 씨가 작고하고 그 제자들이 하나하나 공장을 일으켜 현재의 한국 최고의 옹기마을을 만들었다.
온양에서 언제부터 옹기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지금은 없지만 남창 태화동(현 남창고등학교 부근)에 1910년 이전까지 옹기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고산리의 옹기업은 1950년대 경북 영덕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덕만 씨가 한국전쟁을 피해 이곳에서 옹기를 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특히 철도청이 간절곶 관광열차를 운행하면서 이 마을 옹기회관을 관광코스에 포함시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고 요즘은 울산은 물론이고 부산 등지에서도 옹기 학습을 위해 단체로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 마을은 또 우리나라에서 기와를 제일 많이 생산하고 있는 동상리 기와 공장도 가까이 있어 이를 연계하면 앞으로 명승지로 더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옹기마을에 와서 눈으로만 구경하고 가면 나중에 꼭 후회한다. 다른 건 몰라도 옹기 만들기 체험을 통해서 옹기를 직접 만들어보자. 이렇게 만든 옹기는 나중에 택배(착불)로 보내준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옹기 하나쯤 집에 진열해 놓으면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도 간단하게 하나 만들어봤다.
옹기 체험실습장을 나와서 옹기문화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치 박물관처럼 꾸며진 옹기문화관은 옹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즐겁게 해 줬다.
예로부터 옹기를 그냥 무조건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별로 해당지역의 기후와 생활습관에 맞춰서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옹기의 지역적 특성을 알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과학적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 임진강 이북 ◆ 대동강 유역에서 중점적으로 제조되었던 평양옹기는 전체적으로 입이 큰 것이 특징이다. 이는 추운 지방에서 옹기를 보관하는데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서이며, 입이 큰 쪽의 것이 겨울철에 얼었을 때 깨지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 강원도 ◆ 서부 지역의 옹기형태는 서울·경기도 지역과 유사하나 동부 지역의 옹기 형태는 전(구연부)과 어깨부분의 경사가 더 급하고, 입이 더 넓고, 뚜껑도 조금 더 넓은 편이다. 해안지역의 영향 탓인지 배가 부르지 않으며 배에 비해 입지름이 넓은 편이다. 다른 지역보다 약간 작은 이 지역의 옹기는 산악지방의 지형적 영향으로 들고 다니면서 이동하는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옹기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가전제품에 적용한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좋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복습하는 차원에서 적어보기로 한다.
◀ 통기성(숨을 쉬어요~!) ▶ 예로부터 옹기는 숨쉬는 그릇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태토가 되는 찰흙에 들어있는 수 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벽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만들어 옹기의 안과 밖으로 공기를 통하게 함으로서 안에 담긴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랫동안 보존하여 준다.
◀ 방부성(음식이 썩지 않아요~!) ▶ 옹기에 쌀이나 보리, 씨앗 등을 넣어 두면 다음해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는 옹기를 가마 안에서 넣고 구울 때 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검댕이(연기)가 옹기의 안과 밖을 감으면서 방부성 물질이 입혀지기 때문이다. 또한 잿물유약에 들어가는 '재'도 음식물이 썩지 않게하는 방부성을 높혀준다.
◀ 쓰임새의 다양성(여러 종류의 옹기가 많아요~!) ▶ 장독대, 부엌, 곳간 등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에서부터 신앙용, 의료용품, 악기등 우리 실생활에서 부담없이 집안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 자연으로의 환원(흙으로 돌아가요~!) ▶ 야산에서 얻어지는 흙에다 나뭇잎이 썩어 만들어지는 부엽토와 재를 섞어 만든 잿물을 입혀 구워내기 때문에 깨지더라도 옹기의 성분이 자연 그대로여서 비교적 쉽게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옹기마을 체험을 마치고 두 번째 투어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이동하면서 두 번째 투어장소인 명선교와 태화강 그리고 간절곶과 관련된 기본지식을 문화관광해설사의 자세한 해설을 통해 습득할 수 있었다.
예전 산청 팸투어와 이번 울산 팸투어를 통해서 문화관광해설사의 역할이 관광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지의 기본지식을 습득하고 여행을 할 경우에 상당히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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